창의서밋 리뷰 1. 초대한 입장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했는지 2. 각자 역할에 대한 리뷰(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참여했었던 것) 3. 아쉬웠던 점 4. 자기 발전과 다음 기대에 대한 준비 5. 서밋을 통해서 자신의 창의가 정의 되었는지/와 닿았던 프로그램 |
9월은 참 길었다. 너무 너무 신기했던 일이 많았던 딱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9월이 멀었거니와 저번 한 주는 더 길었다. 끝나지 않을 줄 알았던 한주였다.
다시 월요일, 어떻게 6일이 지났는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도 선명하고 반짝반짝한 시간들을 만났다. 매번 똑같은 에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은 참 견디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까먹지 않게, 차분한 회고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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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밋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맡지 않았다. 물론 내 특유의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워크숍에 참가하는 것 자체로 서밋에 기여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난 1월의 홍콩 서밋과는 다르게, 밀착 가드의 호스트가 되지 못했다. 홈스테이를 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서울 투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유독 다른 작업장에 비해 빡빡했던 촌닭들 일정의 이유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홍콩, 모스코 친구들과 크게 관계를 맺지 못했다. 알려고 하는 욕심도 없어서, 형식적으로라도 이메일 주소 한줄 못 나눠 가졌다. 메이 펑 명함 한 장 뿐. 그래도 저번 홍콩에서 '좋은 선생님이자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창의력학교 프로젝트 디렉터 메이 펑과 인연을 쌓게 된 일은 꽤 만족스럽다. 서밋이 아니면 가질 수 없을 관계였기에 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도대체 이메일은 언제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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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 워크숍, 촌닭들 공연, 후에는 유스포럼 이나 창의마켓에 집중하게 되었다. 워크숍 신청서를 쓰면서 스스로 굉장히 많이 배우게 되었다(덕분에 번역은 죄다 환에게 맡기게 되었지만..). 워크숍 신청서는 이정도로 빡씬 것이 좋을 듯하다. 완전 새로운 질문에 답을 하게 되었으니까. 주위에 '창의적 인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았다. 무척 감사할 일이지. <촌닭들>은 쇼케이스/ 리셉션/ 창의축제에서 공연을 했다. 연습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서밋 기간 내내 팀 안을 아우르던 꿉꿉한 공기들은 서로 이겨내기 어려웠다. 9월 2일, 가을학기를 시작하고 (매번)또 한 달 가량을 정신없이 달려온 셈인데, 숨을 고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때에 팀이 당연히 해야 할 일만을 집어하고 있는 느낌 이었다.
쇼케이스 공연은 관객들의 반응이 참 좋았던 공연이었다. 사진도 너무 예쁘다. 우리나 관객 모두 이정도의 에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서밋 이라는 틀에 있었기 때문 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우리 팀의 표현 방식은, 과정이 아닌 결과를 보여준다. 과정에는 회의와 연습, 결과는 공연뿐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심플하게 <촌닭들>이 어떤 팀인지 바투카다 씨게 때려주면 그만 이겠지만, 우리와 우리가 하는 일을 소개하는 자리를 연습에 묻혀 잊고 있었다. 이렇게 즐거운 공연을 하는 팀이 그간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잘 설명해 주었어야 했는데.
반쪽이 공방 투어와 리셉션 사이에서 더 갈등 했어야 했는데, 공연이라는 말에 덥썩 결정해 버린 우리 책임도 있다. 그래도 서대문구가 한눈에 보이던 연세대 조경과 연어를 감안하면 맛있었다.
저녁에 창의축제 공연을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촌닭들>이 연주하는 리듬은 늘 자극적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우리가 관객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늘 자리에 일어나 춤을 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돌들처럼 나름 즐거워하면서도 팔짱 끼고 보는 관객도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창의 축제 시간이 너무 길었다. 날씨도 추워서 묘하게 쳐지고 우울하고 슬프고. 이건 나만 그랬나.
바람처럼 나타나서 바람처럼 사라진 서동진 씨와, 좋아하는 이지와 함께 준비한 유스포럼은 결과는 미미했으나 사고가 매우 창대해진 시간이었다. 이번 해 내내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들이 알아서 맞물려, 창의력으로 직결되어 생각이 시작 되었다. 택시에 할증 붙듯 다다닥 발제가 완성되었다. 고민을 안고 있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랬나, 표출은 그냥 너무. 정성스레 고통스레 뱉은 토가 아니라, 너무 맞아 주르르 흐른 코피.
물론 유스포럼은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3개국에게 1년 동안 까먹을 숙제가 되었다. 다음에 또 얘기하려나. 물론 내 답은 달라질 것 같다.
창의마켓은 바쁘면 안하고/안 바쁘면 하고 또 불량스러운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취지는 '방에 굴러다니는 웃긴 물건들 비행기 태워보자!' 이었는데, 영어도 안 되고 거의 하자 애들뿐이라 그렇게 되었다. 메이 펑이 말도 안 되는 인도 방석 보자기를 1만원에 사시고(나도 외국에서 이랬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메이 펑 감사해요), 중학교 때 쌤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목걸이를 사 가셨다. 미오는 봉숭아 가루를 엎지르는 바람에 강매 하였다. 카메라 후레쉬 열쇠고리에 줄곧 눈독을 들이던 성미산 학교 아이는 그걸 훔쳐갔다. 누구나 도벽은 있다. 3백원에 샀으니 넓은 마음으로 양보했다. 장발장이나 안 되겠지..
팔릴까 싶어 가져간 물건들이 두세 개를 남기고 모두 팔렸다. 수익 3만 얼마. 이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아코디언 실력으로 연주할 수 있는 모든 곡을 죄다 연주 했다. 아코디언은 참 이기적인 악기다. 매는 순간 세상을 모두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만든다. 내 주위로 메리-고-어라운드가 돌아간다고. 세상이 조곰 예뻐 보이는 효과도 있다. 하늘이 무척 예뻤고, 림자 미용실에서는 희옥스가 가채 같은 머리를 땋고 있었다. 새 세상을 잠시 봤던 것 같다. 롯데에서 일한 후, 말도 안되는 상술이 늘어서 좀 걱정이다. 자꾸 잡아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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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점이 너무 많다. '처음이니까' 그랬던 것도 있었고, 불안함으로 시작되었던 프로그램은 늘 아쉬움으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일단 가장 아쉬웠던 것은 심포지엄 때 999를 보다 밝은 조명으로 셋팅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999에서 심포지엄을 듣진 않았지만, 책상이 달린 의자가 있어도 훨씬 좋았을 거다. 워크숍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 것은 몸속에서 내부적인 회의를 거쳐야겠다(내 몸은 요즘 들어 회의를 자주 갖는다).
내부적인 아쉬움을 다 떠나 이번 서밋이 외부로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자에서 일부러 베타 테스트를 한 것 일수도 있겠지만.. 워크숍 때 이화여고 학생들이 왔었는데, 워크숍은 물론 하자 아우라에 적응하기도 전에 가버려서 아쉬웠다. 다음에는 새로운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왔으면 한다. 시장님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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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별로 안 좋아하는 단어, '성장' 운운하기 보다는 '생각의 지도'를 넓히게 되었다. 온몸이 썩을 만치 슬프고 아픈 일도 겪고,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당황도 했지만.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매 순간 살아 있는 것이 공부이고 이었지만,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이다. 관계에 대해 고민하거나(그런 고민들이 불필요 하다는 것이 아니다),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했던 시간은 지났으니 생각과 실천의 시간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다. 과민하게 '보여 지는 것'에 집착하거나 불안으로 둘둘 감긴 밤들을 이제는 거쳐 보자고. 물론 인생은 이것들의 반복이다. 휘말리고 벗어나고 휘말리고 벗어나고. 조절이 가능하다면 삶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이렇게 쓰니 그레이 아나토미 대사 같군..
내년 5월에 두 번째 창의 서밋을 한다면 그땐 놀러오는 입장이 될까 궁금하다. 그럼 심포지엄도 돈 내고 듣겠지. 더 멋져진 모습 보고 놀랄까 배 아파할까 모르겠다. 창의력은 창의를 떠올릴 수 있는 영감과 자극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 년 동안 흩어져 있던 세계의 친구들을, 창의 서밋이 부를 수 있는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나도 지속적인 '하자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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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대 없을 만치 주위 기류에 대부분의 영향을 받는 나에게 마음에 근육이 붙었다. 100% 창의가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면' 자신이 참 자유롭고 즐겁구나 싶다.
창의가 생겨날 영감과 자극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작게는 생활에서 최대한 많이 느끼는 것이다.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요즘 들어 자신에게 스스로 붙여버린 별명이 있다. 말년 병장. 군대 다녀온 그네들이 듣는다면 어디에 비교 하냐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어깨를 비롯한 온 몸들이 비루하고 퍽퍽해졌다. 뭘 해도 슬프고 지루해서 정말 '곤란'했다. 청천벽력 같은 금쪽같은 휴가를 얻고 종로를 으드득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와서 이러면 안 되지.
나 자신과 타인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큰 세계를, 지속된 애정으로 가꾸어야 한다.
거기가 여기든 어디든. <2008 서울창의서밋>이라는, 띄어쓰기를 어디에 해도 어색한 이 행사를 마치니 맥이 풀린다. 2008년 9월은 2004년 11월과 비슷하게도 잊을 수 없다. 이미 보내버렸지만 그렇다.
8시에 하자에서 일어나 워크숍-공연-투어-연습으로 점철된 하루를 마치고, 12시에는 꼭 내일 아침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 하는 것마다 모두 절어 있었지만 제법 괜찮았다. 꽤 길게 글을 쓰다보니 조금 더 정리가 되었다.
다음 발을 디딜 수 있나. 아니면 다시 그 시간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딱 한번만 알 수 있었던 시간이라
더 그리울 수도 있겠다.
9월은 참 길었다.hwp